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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09 18:36
한번쯤 길을 잃어도 좋을 사랑스런 도시, 과나후아토
 글쓴이 : 나마스떼
조회 : 373  

칸쿤을 출발하여 먼 길을 달려 과나후아토에 도착한다. 해발 약 1,800m의 가파른 언덕 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스페인 식민도시의 특징이 두드러진 곳으로, 1554년 세계 최대의 은광을 배경으로 건설된,전설적인 부의 도시였다. 이 부를 바탕으로 산 디에고 교회와 라 발렌시아나 산프란시스코 교회 등 화려하고 정교한 건축물을 비롯한 아름다운 중세 문화 유산들을 남겨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은광이 쇠퇴하면서 도시도 함께 1930년대까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가, 관광산업이 활발해지고 연방 정부의 농업과 광업 지원이 늘어나면서 꾸준히 회복되고 있다.
좁은 골목 사이로 적당히 세월의 때가 묻어 있는 알록달록한 파스텔톤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키스의 골목은 좁은 길을 두고 마주한 건물 사이가 특히 가까워 양쪽 베란다에서 두 연인이 키스를 나누었던 곳이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시연해보려고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산페르난도 광장, 라파즈 광장, 까페와 키스 골목 등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진을 담았다. 보통은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피필라 전망대(광부 출신의 독립운동가 피필라의 동상이 있다)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우리는 아기자기한 벽화와 골목 풍경들을 즐기며 천천히 걸어서 올라간다.
가다가 막다른 곳에 이르면 물어물어 길을 찾기도 했지만, 길을 잃은 것을 크게 걱정하고 후회할 일은 없었다.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우리의 눈길을 붙잡는 예쁜 풍경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수로를 개조하여 만든 지하도와 터널도 이 도시의 독특한 점이다. 식민지 시절 홍수와 산사태을 방지하기 위해 수로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구시가의 복잡한 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해가 지고나서 가로등과 건물들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도시는 더욱 매력을 더하며, 꿈꾸듯 아름다운 동화 속 풍경을 드러냈다. 어두워 더 이상 촬영하기 어려워질 때까지 많은 사진을 담았다. 이번 중미 여행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생각된다.

도시를 이동하는 동안 현지 가이드가 버스에서 디즈니 만화 영화 '코코'를 보여주었는데, 이 도시가 바로 그 영화의 배경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에서처럼 죽은 사람으로 분장하고 즐기는 '사자들의 축제'가 해마다 열린다고 한다. 마야 후예들의 생사관은 우리들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 살아있는 사람의 세계와 죽은 이들의 세계를 엄격히 가르지 않는 것이다. 어느 마을이나 도시든 한복판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묘지라기보다는 공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다. 죽은 뒤에도 조상의 영혼이 자기들과 늘 가까이서 함께 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주 찾아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우리가 자기 동네에 장례식장이나 공동묘지가 들어오는 것을 기피하는 것과는 너무 다르다.생사관만큼은 이들의 사고방식이 우리보다 훨씬 아름답고 인간적인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연례 행사이자 축제인 '죽은 자들의 날'은 죽은 이의 영혼이 가족과 친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날로, 11월 1, 2일이다. 이날은 집안에 촛불과 향을 피우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장만하며, 망자를 기억하는 시간을 갖는다. 죽은 사람으로 분장하고 거리를 행진하기도 한다. 어린 영혼을 위해서는 장난감이나 사탕을 놓고, 어른을 위해서는 담배나 술을 놓기도 한다. 죽은 가족의 사진과 성인들의 그림, 그 지방의 특산물과 이날 먹는 특별한 음식인 '사자의 빵'을 놓는다. 우리의 제삿상 차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덤에도 찾아가 청소하고 꽃과 촛불을 켜놓는다.

아즈텍 사람들은 사고나 불치병으로 죽은 사람들은 틀라로칸으로 가는데, 거기서 틀랄록이란 신이 그들을 맞이한다고 생각했다. 죽은 영혼들은 거기서 나비를 사냥하거나 달콤한 과일을 먹고, 공놀이 등을 하면서 영원한 삶을 보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죽은 사람들은 4년 간의 힘든 여행을 완수해야 했다. 그동안 모든 종류의 위험과 나쁜 것들과 직면하여 극복해야만 미찬테꾸틀리에 의해 받아들여져 익틀란으로 올라간다. 그동안 그들은 일년에 한번 현세의 집에 머무를 수 있는데, 그것이 11월 초였다.
아즈텍 사람들은 이 영혼들이 힘과 용기를 얻도록 죽은 이를 위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과 음료를 갖추고 연회를 준비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죽은 자들의 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이런 전통의 의미를 유지하면서 11월 1일을 '성인의 날', 2일을 '죽은 신도의 날'로, 그리고 이를 합쳐 '죽은 자들의 날'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때 준비하는 제단은 물, 흙, 바람, 불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컵에 담긴 물은 긴 여행으로 인한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고, 빵은 흙에서 생산된 것으로 영혼의 배고픔을 해소해준다. 형형색색으로 예쁘게 오려 장식한 종이들을 바람에 날리게 함으로써 제단 주위를 더욱 밝고 활력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에 촛불을 켜두면 그것이 영혼을 자신의 제단으로 안내해 준다.
마야와 아즈텍인들이 인신 공양의 풍습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이러한 독특한 생사관이 한 요인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됨으로써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

과나후아토는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머물며 작품을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년 세르반테스 예술제가 개최되기도 한단다.
또 멕시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민중 화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년)의 고향이다. 그는 멕시코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유럽 여러나라로 연구 여행을 했고, 모딜리아니, 피카소, 브라크 등과 친교를 맺고 큐비즘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0년 이탈리아에서 14세기의 프레스코 벽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 화폭이 거대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는 새로 태어난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1921년 멕시코로 돌아온 그는 지금까지의 초현실적인 화풍을 버리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멕시코 민중의 현실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멕시코의 고대 문명을 탐구하였고, 군중과 시장, 축제와 행진하는 군대, 농부와 노동자, 천진한 어린이 들이 그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당시 대두한 혁명적 정신에 공감하고, 민중들이 모이는 거리에 거대한 벽화를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이 벽화 작업 중인 1927년 프리다 칼로(1907-1954)를 만났고,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29년 결혼한다. 21살의 나이 차이에다, 못말리는 바람기로 '식인귀'란 별명까지 가지고 있던 디에고와 그녀의 결혼은 당대인들로부터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 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공산주의자인 그녀는 코요아칸이란 곳에서 공산주의자인 독일계 아버지와 평화주의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날 무렵 멕시코는 민중적 각성에 의한 농민 봉기, 노동자 파업, 지식인의 무장 투쟁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1910년 러시아 혁명을 예고하는 최초의 사회 혁명이 이루어졌다.아버지는 그녀의 평화로운 삶을 기원하여 프리다(독일어로 평화라는 뜻)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녀의 삶은 이름과는 너무도 다르게 고통스럽고 불운한 것이었다.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가늘어진 그녀는 심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18세 때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큰 교통사고를 당해 버스의 레일이 그녀의 옆구리를 뚫고 척추를 다치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이로 인해 그녀는 평생 특수제작된 코르셋과 몸을 지탱해주는 기구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장애를 얻었다. 평생에 걸쳐 7번의 척추 대수술을 포함한 32번의 수술을 해야만 했다.
사고 후 그녀는 고통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암울한 처지로부터 그림의 세계에 빠져듦으로써 탈출구를 찾았다. 그러다 디에고를 만나 사랑했고 결혼했다. 두 사람은 멕시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생과 예술을 꽃피운 연인이자, 예술과 투쟁의 동지였다. 프리다에게 디에고는 영혼이었고, 고통의 근원이었으며 삶의 목적이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동료이자 스승과 제자였으며, 서로를 도왔다.
디에고는 연약한 육체를 가졌으면서도 불굴의 예술적 투혼을 발휘하는 프리다에게서 예술혼을 체험했고, 프리다는 디에고를 통해서 초현실주의 화가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장 멕시코다운 작품에 접근하여 세계적인 민중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구축했다.
그러나 디에고의 무분별한 여성 편력으로 인해 둘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디에고는 자신의 예술적 창조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순간 순간 불붙는 사랑만을 좇아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공식적인 부인만 4명이었고, 프리다는 그의 세번째 아내였다), 외도를 반복했으며 사생아도 많이 낳았다. 예술가로서는 큰 성취를 했는지 모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나 도덕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는 형편없는 못된 인간이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큰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그녀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세 번의 유산을 겪었고, 끝내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심지어 디에고가 그녀의 여동생 크리스티나와도 불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된 프리다는 큰 충격을 받고 결국 이혼을 한다. 그러나 그런 큰 상처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했던 프리다는 서로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와 재결합한다.
어떤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멕시코인으로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영원한 페미니스트의 우상이다. 원주민들의 의상과 벽화 등에 나타나는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와 표현들을 보면, 디에고와 프리다의 그림은 마야와 아즈텍 문명의 후예로서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예술성의 발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유달리 자의식이 강했던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을 특히 많이 남겼다.
죽음을 직감한 그녀는 마지막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와 천경자는 기구한 삶의 역정과 남자로 인해 고통받았던 점, 특정 유파를 따르지 않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자화상을 많이 남긴 점도 같다. 얼핏 보기에 두 사람의 작품은 외형적으로 닮은 점이 많아 보인다.
천경자도 20대의 젊은 나이에 집안의 몰락과 처절한 가난, 불행한 결혼,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 등 폭풍우처럼 한꺼번에 밀려온 많은 불행을 겪었고, 절박한 심정으로 그림에 매달렸다.
그렇지만 프리다와 천경자는 추구하는 이상이 전혀 달랐다. 프리다는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유물론자로서, 초현실주의와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였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체념과 원망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자신의 고통을 관조하고 객관화하는 데 주력했고, 초현실적인 세계에서 구원을 갈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천경자는 자신의 슬픔과 한을 아름다운 환상으로, 초월적으로 승화시키려 했다. 그녀의 자화상은 유난히 긴 목에 초점을 잃은 눈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머리에는 화관처럼 뱀들이 그려져 있다. 그녀에게 뱀은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다. 그녀는 말했다. '창도 그렇고, 소설이나 전설 역시 그렇고, 모든 예술은 한을 승화시켰을 때 향기가 있는 것'이라고.

이정식 (20-03-09 22:54)
 
이선생님 글과 사진들이 너무 감동입니다
이번  모든 여행이 이선생님의 수기로 완벽하게 완성된 느낌입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진심으로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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