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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09 15:33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추억
 글쓴이 : 나마스떼
조회 : 54  

카라코람 하이웨이의 추억

  아내와 함께 그곳을 찾은 것은 2012년 10월 28일부터 11월 5일까지, 포플러와 살구나무들이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들어가던 가을이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방콕을 경유하는 타이항공 비행기를 타고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당시에도 패키지 여행을 취급하는 일반 여행사에는 상품이 거의 없었고, 그 몇 년 뒤부터는 테러를 이유로 여행자 보험이 거부되면서 더욱 여행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한번 그곳에 가본 사람들은 대부분 불편하고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오래오래 잊지 못하며 그리움을 떨쳐내기 어려운,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이다.
  여행 일정표도 없어지고 제대로 기록을 남기지도 않아 자세하고 정확한 일정 등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 행복했던 여행의 추억을 마음에 잡아두기 위해 흐려져가는 기억을 더듬어 적어 본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옛 실크로드의 일부로 신라의 고승 혜초가 서역을 왕래하며 지났던 길이기도 한데, 중국의 카슈가르부터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 이르는 총 1,257m의 길이다. 여기서 하이웨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속도로가 아니고, ‘고도가 높은 길’이란 뜻이다. 히말라야와 카라코람 산맥들이 얽힌 험한 산비탈을 깎아 만들어진 이 길은 대부분 중국의 원조에 의해서 1962년부터 1986년까지 24년이 걸려 완공된 비포장 도로다. 그 중 가장 높은 곳은 일명 피의 고개라 불리는 쿤재랍 패스로 해발 4.974m이다.

  우리는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해 어린 시절의 시골 신작로를 연상시키는 이 길을 흙먼지를 날리며 사나흘을  달려, 베샴, 칠라스, 스카르두, 길기트, 굴미트, 카리마바드 등의 작은 도시와 마을들을 돌아서 드디어 훈자 마을에 도착했다. 도중에 한번은 산사태로 길이 몇 시간 동안 막혀 우여곡절 끝에 온종일 길위에서 시달리다 밤 늦게야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근래 역시 중국의 원조로 이 길을 포장하는 큰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이곳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우리 일행에게 다가와 중국인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았다. 도로 포장이 완성되면 이 지역을 찾는 여정이 훨씬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편하고 빠른 길을 따라 물밀 듯이 밀려드는 외래 문명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좋은 전통과 가치관도 함께 바꾸어 가게 될 것이 염려스럽기도 하다.

  또 이 길 위에서 만난 것 중 인상 깊은 일 한 가지는 트럭들을 참으로 화려하고 독특하게 장식을 하고 있는 점이었다. 시장이나 마을에 들러 신기한 모습으로 이곳 저곳 둘러보며 사진을 담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떤 때는 현지인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이 무슬림인 이 나라 사람들은 여인들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데, 특히 우리 일행 중의 여성들이 자유로운 복장으로 거침없이 돌아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참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다.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이름 높았던 훈자 마을은 아름다운 단풍과 멀리 보이는 설산들, 아침 저녁이면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옅은 안개가 드리워지는 강과 계곡, 이국적인 풍물과 순수하고 친절한 사람들의 모습까지 단번에 우리 일행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즈넉한 마을과 둘러싼 노랗고 붉은 단풍 숲,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고성, 울트라 피크(7,388m)와 레이디핑거(6,000m, 뾰족 솟아오른 모습이 여인의 손톱과 같아 붙여진 이름), 라카포시(7,788m) 등의 설산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지금까지도 꿈에 본 듯 아련하고 환상적이었다. 거기에다가 사람들은 어찌나 순박하고 친절한지..... 이 곳 사람들의 복장은 남녀 모두 모자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여자들은 수 놓은 둥근 소형 모자를 살포시 눌러 쓰고 그 위에 숄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이고, 남자들은 마치 호떡과 같은 모양의 모자를 주로 쓰고 다닌다.

  이 훈자 지역은 1891년 영국의 침략이 있기 전까지 거의 외부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고, 각기 독립된 여러 작은 왕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1974년 파키스탄에 병합되기 전까지만 해도 왕국으로 남아 있었다. 샹그릴라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영국의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이 바로 이 훈자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다고도 한다. 훈자 마을 위쪽의 높은 언덕 위에 요새처럼 자리잡은, 왕궁이라기엔 퍽 소박해 보이는 발티드 고성에 올라가 보면 왕국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왕궁은 티베트의 공주가 시집오게 되면서 티베트 양식을 따라 지어진 것인데, 왕과 왕비의 침실과 접견실, 주방 집기들, 왕국의 국기도 볼 수 있고, 한때 중국의 변방 속국이었음을 증명해주는 임명장과 중국의 화폐 등도 볼 수 있다.
  마을 아래쪽으로는 울트라피크와 레이디핑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빙하수가 마을을 관통하며 흐르는 곳에 또 다른 왕궁, 알티드 고성이 자리잡고 있다.
 
  BC 4세기 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때 이곳에 왔던 병사들 일부가 그래도 이곳에 남아 훈자인들의 선조가 됐다는 설이 전한다. 그래서 그런지 훈자인들은 남녀 막론하고 용모도 빼어난 편이다. 비록 초라해 보이는, 흙과 돌을 이겨 만든 움막 같은 집에서 살고, 남루한 의복을 입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눈동자는 참 맑고 초롱초롱하고, 표정도 밝고 행복해 보인다.
  처음 보는 여행객들을 만나도 누구나 환한 미소로 인사하고, 우리가 관심을 보이며 기웃대면 곧잘 집으로 들어오라고 청하며 과일이나 차를 대접하곤 한다.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양떼들을 몰고 지나가고, 낡고 오래된 교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공부하던 한없이 사랑스럽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농삿일하는 사람들은 삽이나 괭이로, 기껏해야 소의 힘을 빌려 쟁기질하는 정도로 정직하게 땀흘리며 힘겨운 모습이지만, 그 표정은 어둡지 않다. 이들이 장수를 누리게 된 원인을 많은 사람들이 부지런한 생활 습관과 건강한 자연식품을 섭취하며, 가족과 마을의 공동체를 중시하는 생활로 인하여 행복지수가 높은 데서 찾았다. 다만 예전 장수촌의 명성은 점점 퇴색되어간다고 하는 점이 아쉬웠다. 이 오지에도 서서히 현대 문명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변모하고, 무엇보다도 가공 식품 위주로 식생활이 변하면서 비만과 당뇨 등의 질병이 많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이곳 훈자 마을에서 들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순애보 하나, 하세가와 학교에 얽힌 것이다. 하세가와는 전문 산악인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유럽 알프스 3대 북벽을 겨울에 혼자서 등반하는 등 불사조라는 별명을 가진 유망한 산악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1991년 10월 10일 이곳 울트라피크에서 큰 눈사태가 있었고, 당시 세계 최초로 울트라피크 등정에 도전한 일본 등반대의 베이스 캠프를 덮쳤다. 그 속에 하세가와가 있었고, 그는 약 1,200m 아래로 추락하여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 곁에서 빨간 물통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물이 아니라 위스키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그의 아내가 그의 몸에 위스키를 뿌려주고, 생전에 훈자 마을에서 살고 싶다고 말해 왔던 남편의 소원에 따라 마을 뒷산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남겨진 재산을 처분하여 이 마을에 학교를 세워준 것이다.

  스카르두 부근의 론두 계곡을 여행하며 왕궁 호텔에 묵었던 일도 인상 깊다. 때마침 마을 운동장에서는 폴로 경기가 벌어지고 있어서 말로만 듣던 폴로 경기를 관전하는 행운도 얻었다. 말을 카고 달리며 하키와 비슷한 방식으로 퍽을 몰고 가 상대방 골에 넣는 경기인데, 노랗게 물든 포플러 나무들이 둘러싼 아름다운 경기장에서 자욱한 먼지를 날리며 자유자재로 말을 달리는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모습이 참으로 멋있게 보였다.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여기가 폴로 경기의 발상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폴로 구경을 마치고 석양 무렵에 찾아든 숙소는 이 지역의 작은 왕이 살던 왕궁이었다. 지금은 실질적인 정치 권력은 없지만, 아직도 왕의 후손들은 지역사회에서 정신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왕궁을 그 후손들이 이제 호텔로 개조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주위의 풍경도 아름답고, 건물과 집기들이 모두 살아있는 문화재라 할 수 있는 격조 높고 오랜 세월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물론 음식도 푸짐하고 맛깔스러웠다. 오늘 밤만은 나와 아내가 이 왕궁의 주인, 왕과 왕비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멀리서나마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하나인 낭가파르밧의 아름다운 모습도 보았고, 이슬라마바드 인근의 탁실라 고대 유적지에서는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간다라 미술의 실체도 엿보았다. 만약 나에게 다시 한번의 파키스탄 여행 기회가 주어진다면, 훈자 마을과 더불어 파키스탄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히말라야 설산들을 찾아 트레킹을 해 보고 싶다. 이 나라에도 네팔이나 중국의 티베트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8,000m급 거봉들이 여럿 존재한다. 세계 2위봉 K2(8,611m), 9위봉 낭가파르밧(8,126m)를 비롯해 12위봉 브로드피크(8,047m), 가셔브룸1,2봉(8,068m, 8,035m) 등이 있어 산악인들과 트레커들에게 이기기 어려운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얼핏 황량하고 삭막해 보이는 풍경에 배어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 그 거칠고 험한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순박함을 잃지 않고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순수한 사람들, 언제든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이정식 (18-08-17 23:55)
 
이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디 좀 다녀오느라 올려주신 글을 이제야 보게 되었네요.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정말 가슴 뭉클한, 주옥같은 수기입니다.
그 때가 2012년 가을이니까 벌써 6년 전의 추억이군요.
두 분 여러모로 고생 참 많이 끼쳐드렸는데, 이제 글을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 겪은 너무나도 많은 다양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하나하나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제마음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다시금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운 날씨 두 분 건강히 지내시고 선선할 때 한번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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