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8-19 14:11
|
글쓴이 :
michelle
 조회 : 3,113
|
꿈속의 세상 ‘라다크’를 기억하며
라다크에서 돌아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 내 머릿속은 꿈속을 헤맨다. 현실세계를 다녀온 것인지 꿈속을 다녀온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라다크에선 하늘 위로 떠도는 뭉게구름을 점프하면 잡을 수 있을 듯했다. 유별나게 하얀 색채를 띤 뭉게구름들은 바람을 타고 춤을 추며 파란 창공을 날아다닌다. 그 사이사이로 비스듬히 내려온 햇빛은 인간세상에 자신만의 또 다른 그림을 그린다. 하얀 곰파와 황금색 보리밭, 바위 투성이의 산들에게도 생명을 불어넣어 더욱 빛나게 해준다. 벌거숭이산들도 마치 유명 디자이너가 그린 듯 오색의 빛살무늬로 일렁이다 사라지곤 한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은 만년설과 빙하를 머리에 이고 여행객을 맞는다. 얼음이라도 태울듯한 강렬한 햇볕에 산들 사이의 좁은 협곡은 만년설이 보내는 눈물을 흘리며 실개천을 만든다. 그 아래쪽 분지엔 넓은 습지와 야생화 군락이 형성되어 소, 쬬, 양, 염소 등 가축들의 삶의 놀이터가 되고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된다. 난 그곳이 벌써 그리워진다. 입으로 흘러내린 콧물을 빨아먹으며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예불시간에 장난치는 동자승들의 표정, 담배 한 개비에 행복한 미소를 날리는 할아버지의 미소가 또한 그립다.
‘인도’를 정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컬러풀 인디아’라고 했다. 어쩌면 이보다 정확한 표현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지역에 따라 확연히 차별화된 문화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라가 인도가 아닐까.
이번 인도여행은 나에겐 세 번째다. 흔히들 ‘북인도’로 부르는 델리-바라나시-아그라 등을 찾은 첫 인도 여행, 난 인도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부수고 ‘삶’과 ‘죽음’엔 경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여행에선 라자스탄주에 속한 수많은 도시와 고성, 그리고 엘로라-아잔타 등 불교-힌두교 석굴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는 인도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인도를 찾아간 이번 여행은 인도의 최북단 잠무-카슈미르주(Jammu and Kashmir)의 라다크와 잔스카르 지역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힘든 여정이었지만 매순간 감동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작가의 ‘오래된 미래’를 옮기며 라다크 사람들의 가족공동체 결속력, 자연친화적 삶 등에 대해 감동을 받는다. 라다크 사람들의 모습은 불과 40-50년 전만해도 한국 사람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우리들은 단지 짧은 기간에 쉽게 잊힌 과거를 아쉬워한다. 돌담길을 걷고 있는 노인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난 한국의 서당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깊이 파인 노인들의 얼굴주름과 눈빛에서 우리네 어른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번 여행의 포커스는 잔스카르 파둠의 사니곰파에서 열리는 사니마을 축제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티벳불교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축제의 의미나 의식이 아니었다.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와 있는 듯한 자연풍광과 사람들의 삶에 대한 진솔한 모습이었다. 레-창라패스-판공초-레-카르길-랑둠-파둠으로 가는 여정동안 고산지대에서 느끼는 두통에도 불구하고 마을마다 티벳인들이 보내주는 다정한 인사 ‘줄레’와 따뜻한 미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검게 그을린 노인네들의 얼굴과 깊이 파인 이마의 주름살에서 삶의 깊이를, 행복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난 생각한다. 티벳트인들이 가장 많이 외우는 불교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주문, “옴마니반메훔”이다. ‘관세음보설 육자진언’이라고도 한다는 주문의 뜻은 ‘옴, 보석 연꽃, 훔’이란다. ‘보석 연꽃’은 그들에게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들에겐 무엇일까. 라다크 사람들은 바람에 휘날리는 타르초에서, 원통에 불경을 적어놓은 마니차에서 보석 연꽃을 찾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이들에겐 오직 종교가 삶의 중심이고 자연과 인간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공동체적 운명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보석을 찾아야 할까. 탐욕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빅 퀘스천’으로 남는다.
바쁜 일상생활을 접고 한번쯤은 인도 최북단을 방문해 보자. 정말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자연풍광을 보며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단지 고산지대인 만큼 가능한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적을 때, 조금이라도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이 변하지 않을 때 찾아가길 권한다. 삶이 힘들고 지루할 때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후회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P.S. 여행을 기획하고 풍성한 식탁을 준비한 이상무님, 현지 가이드 앙축, 그리고 함께 동행했던 5분과의 소중한 인연을 잊지 않겠습니다. 여행 내내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