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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13 23:08
람베티의 꿈
 글쓴이 : 이정식
조회 : 3,408  

‘네팔’ 하면 대개 히말라야를 떠 올린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가 있고 8천 미터급의 고봉을 자랑하는 설산들이 그림처럼 줄을 지어 전 세계의 여행객을 유혹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여행객들도 십중팔구는 히말라야를 보기 위해 네팔을 찾는다.
지난 해 4월, 나를 포함해 네 사람은 좀 더 색다른 여행지를 가기 위해 테라이 평원의 서쪽 끝 ‘당가디’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테라이 평원은 히말라야 남쪽, 네팔의 거의 전 지역에 걸쳐있는 저지대의 광활한 평원으로 쌀과 밀을 포함해 대부분의 곡식과 채소가 생산되는 지역을 일컫는다. 한 마디로 네팔의 곡창지대이다. 테라이 평원에는 예전에 인도의 라자스탄 지역에서 전쟁을 피해 이주를 했다는 라나타루족이 드문드문 마을을 이루고 모여 살고 있는데, 근래 들어 대부분의 주요 타루족 마을들이 관광 상품화 되고 관광객들의 입맛에 맛도록 왜곡되어 순수한 타루족 고유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접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으로 평원의 가장 서쪽 오지로 여행을 결정하게 된 것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8년 전에 한 TV에서 스페셜 다큐로 방영되었던 동영상 ‘람베티의 꿈’을 참고하였다.
동영상에 등장하는 람베티는 서부 테라이의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장래에 의사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지닌 16세의 타루족 소녀였다. 람베티와 그 가족이 등장해 라나타루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통적인 복장과 독특한 방식으로 고기를 잡는 모습 등을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우리 일행의 여행에 많은 감동과 영향을 주었고 결국 우리를 이곳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당가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는 곧장 라나타루족의 마을을 찾아 나섰다. 라나타루족의 변형되지 않은 전통복장과 몇 가지 고유한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아보자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관광객에 때 묻지 않은 타루족의 마을을 찾아야 했다. 지나치는 마을마다 어쩐지 동영상에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영상에서의 계절은 겨울인데, 지금은 4월이라서인지 추수를 앞둔 누렇게 익은 밀밭이 온통 평원을 메우고 있었다.

좁은 시골길을 한참 달려 한 마을 어귀에 차를 세우고 마을 노인에게 타루족의 마을이 어디냐고 물었다.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아 스마트폰에 미리 저장해 둔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어디냐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저만치 지나가던 아이 하나를 불러 동영상을 보라고 했다. 스마트폰을 한참 보던 아이는 갑자기 손가락으로 람베티를 가리키며 가이드에게 말했다. “나 이사람 알아요. 어디 사는지 알아요.....!”
세상에 이럴 수가. 우리는 얼굴을 서로 바라보며 “오 마이 갓”을 연발했다.
아이는 우리 차에 올라타고는 운전수에게 이리저리 길을 가리켰다. 자동차는 누런 밀밭들을 이리저리 돌아 돌아서 어느 소박하고 작은 집에 도착했다. 세상에....생각지도 않았던 람베티. 바로 그녀의 집이었다. 동영상이 촬영된 지 8년이나 지나서, 그녀의 집에 다른 한국 사람이 방문하게 된 것이다.

람베티는 집에 없었다. 대신 그녀의 남편이 아이의 말을 들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람베티는 당가디 시내의 한 전문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좀 늦어진다고도 했다. 우리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무척 반갑고 고맙다고도 했다. 8년 전에 촬영했던 동영상이라며 스마트폰을 보여주자, 깜짝 놀라며 처음 본다고 했다. 남편은 인근의 작은 초등학교 교장인데, 6년 전인가 람베티와 결혼해서 아들도 하나 있었다.

벌써 다 저녁이 되어 붉은 노을이 마을을 비추기 시작했다. 우리는 남편에게 내일 다시 올테니 람베티를 꼭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날 저녁,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람베티와의 기적적인 만남에 흥분이 되어 잠을 설칠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이튿날 아침, 일행은 서둘러 다시 람베티의 집을 찾았다. 이곳 오지의 마을들은 전기 자체가 들어오지 않아서 아침 일찍 어둠속에서 집안일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너무 일찍 집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람베티와의 조우를 기다리는 마음에 기다림이 전혀 지루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이윽고 기다리던 그녀가 방에서 나와 마당에서 기다리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정말 람베티인지 확신이 서질 않아 잠시 머뭇거렸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수도 없이 보고 또 보고 했던 동영상 속의 람베티는 훨씬 앳되고 통통하고 예쁘고 활기찬 소녀였는데, 깡마르고 작은 여자가 아이를 안고 나오는 모습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이도 훨씬 많아보였다.
순간, 나는 아차 했다. 동영상 속의 람베티는 8년 전이었고, 물론 결혼하기 전이었으며 지금은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애엄마가 된 후의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마르고 다소 지쳐 보이긴 해도 눈매와 눈빛만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이상하게도 람베티를 만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것 처럼 느껴졌다. 마치 오랜 객지생활 끝에 마침내 고향집으로 돌아와 앞마당에서 누이동생과 상봉한 기분이랄까.....

자초지종을 그녀에게 다시 설명했다. 우리가 이 지역에 온 목적은 그저 라나타루족의 순수한 전통모습을 보고 싶고 촬영하고 싶다는 것. 하지만 당신을 만나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 등등. 그녀는 우리의 목적을 모두 이해하였다. 모든 준비를 자기가 할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면서 동네사람들, 여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화도 없고 전기도 없는 지역이라 집집을 돌며 여자들을 불러 모았다. 동네 여자들은 밀밭으로 일을 나가는 것을 접고 일행의 촬영을 위해 전통복장을 준비하고 낚시도구들을 준비했다.

그녀들이 준비하는 동안 남편의 양해를 얻어  람베티 부부가 사용하는 방을 보고는 많이 놀랐다. 방바닥은 그냥 땅바닥이었다. 시멘트나 타일도 아니고 그냥 맨땅. 나무 침대가 구석에 놓여 있었는데, 침대 위 창문틀에는 람베티가 쓰는 것으로 보이는 작은 손거울이 하나 놓여있었고, 벽에는 옷을 걸을 못 몇 개뿐이었다. 작은 장롱이 하나 있었는데, 장롱이라기보다는 그저 작은 옷상자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무척이나 가난한 마을이고 가난한 집에 람베티는 살고 있었다. 전문학교를 다니는, 영어를 잘하는, 장래의 꿈이 의사인 여자의 방이라고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잠시 장신구를 가지러 들어오는 람베티에게 물었다. “람베티, 동영상을 보니 당신은 언젠가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데,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어서 공부 하는 게 좀 어렵지 않아요?” 그녀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직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남편이 뒷바라지 해주거든요....“ 더 이상 말 안해도 안다. 람베티는 의사가 되고픈 꿈을 접기에는 아직 너무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다.

람베티와 마을의 여자들은 우리의 요청에 순순히 응해주었다. 완벽하게 라나타루의 전통복을 입고는 몇 년 만에 입어보는 것이라고 쑥스러워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일행은 그녀들의 포트레이트와 춤, 마을 건너편 작은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까지 모두 촬영하고 나서 부엌바닥에 둘러앉아 가족과 함께 소박하게 그들의 전통음식으로 식사를 하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마을을 떠날 때, 람베티는 집근처에서 풀을 뜯어 팔찌를 만들어 일행에게 걸어주면서 자기를 찾아줘서 감사하고 짧은 만남이 섭섭하다면서 눈물지었다. 우리도 덩달아 가슴이 짠해졌다.

“람베티. 기운 내요. 그리고 어떻게 하든 당신의 꿈을 이루기를 바래요...”

귀국 후 그녀가 알려준 학교의 메일주소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사진을 보내지 못했다. 대신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로 약간의 학용품을 보냈다. 람베티에게 전해달라고. 하지만 제대로 전달이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눈물고인 눈으로 마을의 어귀까지 따라 나와 배웅하면서 전했던 그녀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꼭 다시 오세요. 1월에 오시면 참 좋아요. 노오란 유채꽃도 볼 수 있답니다. 꼭 다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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